소베츠크 (칼리닌그라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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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베츠크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에 위치한 도시로, 1288년 튜턴 기사단에 의해 샬라우너 하우스 성이 건설되면서 틸지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807년 나폴레옹, 프로이센, 러시아 간 틸지트 조약이 체결된 역사적 장소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병합되어 소베츠크로 개명되었다. 현재는 칼리닌그라드주 내 행정 구역으로, 틸지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치즈 생산 전통을 바탕으로 산업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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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베츠크 (칼리닌그라드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 | |
러시아어 이름 | Сове́тск |
독일어 이름 | Tilsit (틸지트) |
독일어 발음 | /ˈtɪlzɪt/ |
리투아니아어 이름 | Tilžė (틸제) |
위치 | 칼리닌그라드주 |
도시 지위 획득 | 1552년 |
행정 | |
연방 주체 | 칼리닌그라드주 |
도시 자치구 | 소베츠키 도시 자치구 |
행정 중심지 | 소베츠키 도시 자치구 |
수장 | 빅토르 스밀긴 |
면적 | |
면적 | (자료 없음) |
인구 | |
1989년 인구 조사 | 41,881명 |
2002년 인구 조사 | 43,224명 |
2010년 인구 조사 | 41,705명 |
최근 인구 | (자료 없음) |
인구 밀도 | (자료 없음) |
역사 | |
설립일 | 1288년 |
이전 이름 | Tilsit (틸지트) |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 238750 |
지역 번호 | 40161 |
웹사이트 | 소베츠크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1288년 튜턴 기사단(독일기사단)이 샬라우너 하우스(Schalauner Haus)라는 성을 건설하면서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1552년 도시로 성장하였다. 1807년 7월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사이에 평화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프로이센의 영토는 크게 줄었으나, 프로이센 왕비 루이제의 의연한 교섭은 망국의 기로에 있던 프로이센인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1945년까지 루이제 왕비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부부가 머물렀던 집에는 대리석 명판이 걸려 있었고, 시내에는 이 도시 출신의 시인 막스 폰 솅켄도르프(1783~1817)를 기념하는 솅켄도르프 광장이 있었다.
1900년경에는 34,5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되어 노면전차가 생겼으며 쾨니히스베르크와 라비아우로 이어지는 철도가 운행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메멜란트가 리투아니아 영토가 됨에 따라, 틸지트는 네만 강을 사이에 두고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1709년부터 1711년까지 동프로이센을 덮친 페스트 대유행으로 틸지트에서도 인구가 격감했지만, 18세기 전반에 네덜란드에서 온 메노나이트, 잘츠부르크에서 온 프로테스탄트, 스위스인 등 각지에서 박해받던 종교의 신자들이 틸지트로 이주하여 인구를 회복시켰다. 이들이 가져온 치즈 제조 기술은 틸지터 치즈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에서 리투아니아어 문서 출판이 금지되자, 틸지트는 리투아니아어 책을 인쇄하여 러시아령 리투아니아에 밀수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1918년에는 프로이센 왕국 내 리투아니아인 지역(소 리투아니아)과 리투아니아 본국을 통합하여 단일 리투아니아 국가를 만들자는 틸지트 결의(Act of Tilsit)가 프로이센-리투아니아인의 대표들에 의해 서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독일 동프로이센의 도시였지만, 1945년 1월 20일 소련군이 들어와 독일인 주민들은 추방되었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 연방의 도시가 되어 현재에 이르며, 1945년 소련의 지배를 기념하여 소베츠크로 개명되었다. 현대의 소베츠크는 틸지트 시대부터의 치즈 생산 전통 등을 살려 산업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7년 4월 이후, 러시아 정부는 소베츠크나 바그라티오노프스크 등 칼리닌그라드주의 국경 지대에 대한 여행을 통제하고 있다.
2. 1. 초기 역사
1552년 프로이센 공작 알브레히트로부터 시민권을 받은 틸지트(Tilsit)는,[4] 1288년에 설립된 슐라우어 하우스(Schalauer Haus)라고 알려진 튜턴 기사단의 성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454년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에우워는 반(反)튜턴 프로이센 동맹의 요청에 따라 이 지역을 폴란드 왕국에 병합했다.[5] 이후 13년 전쟁 (1454-1466)을 거쳐 튜턴 기사단의 봉토로서 폴란드의 일부가 되었으며,[6]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나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승격되었다.스칸디나비아 전쟁 중인 1678~1679년 겨울에는 스웨덴 제국에 점령되기도 했다.[4] 18세기부터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였으며, 7년 전쟁 중인 1757~1762년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4] 이후 다시 프로이센으로 돌아갔다.

1552년 도시 지위를 얻은 틸지트는 샤라우너 하우스(Schalauner Haus, 1288년 건설)라고 불리는 독일 기사단 성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틸지트에서 라그니트(현재의 네만시)에 걸쳐 있는 네만강(메멜강) 유역에는 프로이센인 스칼와족(스칼로비아인)이 살았으며 요새를 구축했지만, 독일 기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네만강과 틸제강 합류점의 요새는 13세기에 점령되어 독일 기사단 영토가 되었다. 이것이 틸지트의 시작이다. 이 성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부터의 방어와 리투아니아 대공국 공격 거점으로서 라그니트와 함께 중요한 성이 되었다. 15세기 말 성 근처에 취락이 생겨 교역 중심지가 되었고, 1552년 도시법을 획득했다.
2. 2. 18세기 ~ 19세기: 프로이센과 틸지트 조약
1288년 튜턴 기사단(독일기사단)이 샬라우너 하우스(Schalauner Haus)라는 성을 건설하면서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552년 도시로 성장하였다.1807년 7월,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사이에 평화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프로이센의 영토는 크게 줄었지만, 프로이센 왕비 루이제의 의연한 교섭은 프로이센인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7] 1945년까지 루이제 왕비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부부가 머물렀던 집에는 대리석 명판이 걸려 있었다. 시내에는 이 도시 출신의 시인 막스 폰 솅켄도르프(1783~1817)를 기념하는 솅켄도르프 광장이 있었다.

틸지트 조약의 예비 협상은 네만강에 닻을 내린 뗏목 위에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조약으로 베스트팔렌 왕국과 바르샤바 공국이 창설되었고, 프로이센 왕국은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조약 서명 3일 전, 프로이센의 루이제 여왕(1776–1810)은 나폴레옹과의 대화에서 프로이센에 대한 가혹한 조건을 완화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제의 노력은 프로이센 국민들에게 호감을 얻었다.[7]
1900년경에는 34,5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되었고, 노면전차가 생겼으며 쾨니히스베르크와 라비아우로 이어지는 철도가 운행되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 내에서 리투아니아어 라틴 문자 금지가 시행되는 동안, 틸지트는 리투아니아 책을 인쇄하는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이 책들은 크니그네샤이에 의해 러시아가 통제하는 리투아니아 지역으로 밀수되었다. 19세기에는 마을에 두 개의 루터교(하나의 리투아니아와 하나의 독일), 하나의 칼뱅교, 하나의 가톨릭 교회, 그리고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8] 1877년, 리투아니아어 예배와 함께 주간 독일어 예배가 리투아니아 교회에서 시작되었다.[8] 1884년에는 리투아니아인이 마을 인구의 13%를 차지했다.[9]
2. 3.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소련 시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메멜란트가 리투아니아 영토가 됨에 따라, 틸지트는 네만 강을 사이에 두고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13]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독일 동프로이센의 도시였지만, 1945년 1월 20일 소련군이 들어와 독일인 주민들은 추방되었다.[11]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이 도시를 방문했고, 그가 네만강 위에 있는 유명한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전쟁 중 독일군은 이 도시에서 스탈라크 I-A 포로 수용소의 강제 노동 하위 수용소를 운영했으며,[11]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에서 추방된 폴란드인도 도시 근처에서 강제 노동자로 노예가 되었다.[12]
1945년 1월 20일(동프로이센 공세 중)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된 틸지트는, 1945년 소련에 병합되었다. 대피하지 않은 나머지 독일인들은 포츠담 협정에 따라 이후 추방되었고 소련 시민으로 대체되었다. 이 도시는 소비에트 통치를 기리기 위해 소베츠크로 이름이 바뀌었다.
2. 4.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 연방의 도시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1]1939년 틸지트의 인구는 59,105명이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독소전) 말기인 1945년 1월 20일 붉은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고, 같은 해 동프로이센 북부는 소련에 병합되었다.[1] 틸지트에 남아 있던 독일인은 추방되었고, 대신 소련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1] 1945년 소련은 틸지트를 소베츠크로 개명하였다.[1]
현대의 소베츠크는 틸지트 시대부터의 치즈 생산 전통 등을 살려 산업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1]
2007년 4월 이후, 러시아 정부는 소베츠크나 바그라티오노프스크 등 칼리닌그라드주의 국경 지대에 대한 여행을 통제하고 있다.[1]
3. 지리 및 기후
소베츠크는 리투아니아 소(小)지방[9]에 위치하며, 틸자강과 네만강의 합류 지점에 있다. 리투아니아의 파네무네는 이전에는 이 도시의 교외 지역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네만강 너머의 교외 지역은 1920년에 틸지트에서 분리되었다(나머지 클라이페다 지역과 함께).
소베츠크는 -3°C 경계를 기준으로 할 때 서안 해양성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b'')이며, 0°C 경계를 기준으로 할 때는 습윤 대륙성 기후(''Dfb'')이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평균 최고 기온 (℃) | -0.6°C | 0.7°C | 5.4°C | 12.3°C | 17.5°C | 20.2°C | 22.8°C | 22°C | 17.5°C | 11.1°C | 6°C | 2.1°C |
평균 기온 (℃) | -2.7°C | -1.8°C | 1.8°C | 7.8°C | 13.1°C | 16.4°C | 19°C | 18.3°C | 14°C | 8.4°C | 4.2°C | 0.4°C |
평균 최저 기온 (℃) | -5°C | -4.5°C | -1.8°C | 2.9°C | 8°C | 11.8°C | 14.8°C | 14.4°C | 10.5°C | 5.8°C | 2.3°C | -1.4°C |
강수량 (mm) | 59mm | 50mm | 51mm | 46mm | 56mm | 75mm | 95mm | 83mm | 65mm | 68mm | 60mm | 57mm |
3. 1. 지리
소베츠크는 리투아니아 소(小)지방[9]에 위치하며, 틸자강과 네만강의 합류 지점에 있다. 리투아니아의 파네무네는 이전에는 이 도시의 교외 지역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네만강 너머의 교외 지역은 1920년에 틸지트에서 분리되었다(나머지 클라이페다 지역과 함께).3. 2. 기후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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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최고 기온 (℃) | -0.6°C | 0.7°C | 5.4°C | 12.3°C | 17.5°C | 20.2°C | 22.8°C | 22°C | 17.5°C | 11.1°C | 6°C | 2.1°C |
평균 기온 (℃) | -2.7°C | -1.8°C | 1.8°C | 7.8°C | 13.1°C | 16.4°C | 19°C | 18.3°C | 14°C | 8.4°C | 4.2°C | 0.4°C |
평균 최저 기온 (℃) | -5°C | -4.5°C | -1.8°C | 2.9°C | 8°C | 11.8°C | 14.8°C | 14.4°C | 10.5°C | 5.8°C | 2.3°C | -1.4°C |
강수량 (mm) | 59mm | 50mm | 51mm | 46mm | 56mm | 75mm | 95mm | 83mm | 65mm | 68mm | 60mm | 57mm |
소베츠크는 -3°C 경계를 기준으로 할 때 서안 해양성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fb'')이며, 0°C 경계를 기준으로 할 때는 습윤 대륙성 기후(''Dfb'')이다.
4. 행정 구역 및 인구
소베츠크는 행정 구역 및 인구 변화를 겪었다.
4. 1. 행정 구역
행정 구역 내에서 이곳은 주(oblast) 중요 도시인 소베츠크(Sovetsk)로 통합되어 있으며, 이는 구(district)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행정 단위이다.[17] 지방 자치 단체로서, 주 중요 도시인 소베츠크는 소베츠키 도시 구(Sovetsky Urban Okrug)로 통합된다.[18]4. 2. 인구
연도 | 인구 |
---|---|
1816년 | 10,548 |
1821년 | 11,248 |
1880년 | 21,400 |
1891년 | 24,126 |
1900년 | 34,539 |
1910년 | 39,013 |
1925년 | 50,834 |
1933년 | 57,286 |
1939년 | 59,105 |
1946년 | 6,500 |
1959년 | 31,941 |
1989년 | 41,881 |
2002년 | 43,224 |
2004년 | 43,300 |
2010년 | 41,705 |
2010년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5. 건축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도시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구 시가지 중심부에는 여전히 여러 독일 건물들이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유겐트stil 양식의 건물도 포함되어 있다.[1] 현재 리투아니아의 파네무네로 도시를 연결하는 퀸 루이즈 다리는 아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1907년에 지어진 더 복잡한 전쟁 전 다리 구조의 유일한 잔해이다. 아치 위에는 퀸 루이즈의 조각된 부조 초상화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소련이 도시를 점령한 후 독일 비문 "KÖNIGIN LUISE-BRÜCKE"는 제거되었다.[1]
네만 강에 걸린 다리는 루이제 여왕 다리라고 하며, 강 건너편의 리투아니아 영토(파네무네)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 아래에 떠 있는 뗏목 위에서 틸지트 조약이 조인되었다.[8]
6. 자매 도시
소베츠크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21]
국가 | 도시 |
---|---|
폴란드 | 리츠바르크 바르민스키({{lang|pl|Lidzbark Warmiński|} | })